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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한글 창제 이유에 대한 잡담 일기/잡담


"한글의 발명"이라는 학술서 출간에 관한 2015년 7월 24일자 국제신문 기사다. '문제적' 학술서라고 하면서 몇가지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고 가장 이상해 보이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
전문학술서인 이 책은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어리석은 백성의 문자생활을 편하게 하려고 사상 유례가 없는 문자를 독창적으로 창제하셨다'는 신화적 접근을 경계한다.
...
먼저 한글 창제의 근본 동기 부분. 결론은 원나라 건국에 따라 한자의 중국어 발음과 우리 발음이 크게 달라져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자 이를 해결하려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한자의 한어음(漢語音)을 표기하거나 우리 한자음을 수정해 백성에게 가르칠 때 필요한 '발음기호'로 만들어진 것이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새로운 문자'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



기사의 제목도 이 부분에서 뽑았다. 위의 문단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들었던 느낌은, "기존의 위대한 업적을 놓고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 무작정 폄하하고 싶은 사춘기적 오만함의 표출"이다. 물론 해당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나름의 근거가 있을 수 있고, 기자 입장에서는 클릭을 최대한 유도하기 위해 가장 도발적인(?) 부분을 골라내 이런 식으로 제목과 내용을 구성하고 기사의 분량 제한으로 인해 자세한 내용은 생략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아래의 문제들을 한번 생각해 보자.

1) 당신은 조선의 왕이다. 얼마전에 송나라가 쇠퇴하고 원나라가 흥하였다. 이에 따라 한자의 중국어 발음이 예전과 달라졌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가. 똑똑한 사람들을 선발해 원나라로 유학을 보내거나 원나라에서 학자를 초청하여 배우면서 발음의 차이에 적응한다.
  나.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발음기호 체계를 창제한다.
  다. 기타 (     )

2) 당신은 중국의 황제다. 수도권(예: 북경어) 발음과 지방의 방언(예: 광동어) 발음이 너무 달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가. 똑똑한 사람들을 지방의 교육기관으로 보내서 수도권의 발음을 가르치고 보급한다.
  나.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발음기호 체계를 창제한다.
  다. 기타 (     )

3) 아래에 제시된 일련의 "중국어 발음기호"에 대응하는 중국어를 쓰고 발음해 보시오. (주관식)
  "불휘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용비어천가 2장)

어차피 내가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라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쓸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좀 생각해 보자면 이렇다.

조선 이전에도 이미 천년도 넘게 중국의 여러 왕조와 외교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단지 발음 차이 때문에 의사소통이 불편해졌다는 이유로 이전에 없던 발음기호 체계를 아예 새로 만들어 국가 전체에 보급하는 대작업을 감행한다? 한글을 중국어 발음을 설명하는데 이용할 수 있었다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이걸 한글 창제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상정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_-;

한글 창제에 대하여 최만리 등 일부 신하들이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는데 그들이 첫번째로 제기하는 반대 이유는 "예로부터 중화를 섬겨왔는데 이렇게 한자가 아닌 다른 글자를 만들어서 사용한다는 소식이 중국에 들어가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중국어 의사소통을 더 잘하고 싶어서 "문자"가 아니라 "발음기호"를 만들었다면 중국에 대해 대체 뭐가 부끄럽다는 거냐 -_-;

조선은 이웃의 대국인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했을 것이므로, 한자를 대체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그보다는 국가의 통치규범으로 삼고 있는 유교적 가치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을 것이다. 굳이 근본적인 이유를 따지자면 이쪽이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인다.

표의문자인 한자는 한국어와는 맞지 않으므로, 한문을 공부한 지식층이 아닌 일반 백성에게 삼강오륜을 비롯한 유교의 핵심을 제대로 가르치고자 한다면 한국어에 부합하는 표음문자를 만드는 것이 상당히 괜찮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명칭도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표음문자다. 

(완벽하게 대응되는 사례는 아니겠지만, 유럽의 성경 번역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식층이 아닌 일반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기독교적 가치관을 제대로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면 모국어로 번역된 성경은 꽤 괜찮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만약 중국에서 한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한자를 대체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고, 좀 더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한 조선 전용 발음기호 정도로 생각해달라"는 식으로 핑계를 댔을 수는 있겠다. 

원나라와의 의사소통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발음기호"를 이용해서,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용비어천가, 유교적 모범 사례를 알리기 위한 삼강행실도언해, 성리학 문헌인 소학을 한글로 번역한 소학언해 같은 책들이 만들어졌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발음기호를 가지고 번역을 하고 책을 썼는가? 이건 발음기호가 아니라 표음문자 아닌가? -_-;

명석하고 비범한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국민 전체에 도움이 되는 뭔가 대단한 발상을 해서 이를 실제로 구현했고, 그 결과물을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는 사례는 세계 도처에 있다. 한글 또한 이러한 사례들 중 하나다. 이것을 가지고 왜 "신화적 접근"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면서 한글은 문자가 아니라 중국어용 발음기호였다는 식으로 생각하는지 나로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한글에 대해 엄청 과장된 찬양을 하고 있거나 세종 신격화 운동을 하고 있다거나 뭐 그런건가?;;

한글이 독창적이라는 표현을 놓고 마치 초월적인 지성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순진무구한 사람이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드는 대작업을 진행했다면 당연히 활용 가능한 모든 자료와 지식을 최대한 동원해서 연구했을 것이다. 

뉴턴이 고전역학의 틀을 세웠다고 해서 과거의 수학/과학 관련 지식은 싸그리 다 무시하고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수학과 물리학을 새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천재적이고 독창적인 결과물의 뒤에는 항상 오랫 동안 축적된 과거의 지식과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만든 이유가 뭐가 되었던 간에, 한글이 천재적인 발명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결과적으로 백성들의 문자생활이 향상된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한글 창제를 주도한 세종이 우리 역사상 손에 꼽힐 위대한 왕이라는 점도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한글이 발명된 근본적인 이유가 "중국어용 발음기호"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_-;



덧글

  • 혜성같은 눈의여왕 2020/04/22 22:53 # 답글

    ㅎㅎ 정확한 지적이네요.
    님 말을 들으니 확실히 세종대왕이 창의적이고 개성있는 부분이 있네요.
  • 반달가면 2020/05/13 15:14 #

    세종이 위대한 업적을 많이 이룬 훌륭한 왕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다른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이 많아서 이제서야 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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