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 "카인과 아벨"이 워낙 잘 알려져 있다 보니 아래에 적은 짧은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창세기에 포함된 원본의 심오함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졸작이겠으나, 어쨌든 그냥 잊어버리자니 조금 아까워서 여기에 기록해 둔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어떤 시기에, 어떤 도시에, 형제가 살았다. 형의 이름은 카인, 동생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은 카인보다 성실하고 눈치도 빨랐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사업이 잘 되어 돈도 많이 벌었다. 친구도 많았고 여자들도 아벨에게만 모여드는 것 같았다. 반면에 카인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긴 했지만 아벨의 성공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였다.
카인은 항상 아벨이 맘에 들지 않았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아벨만 일이 잘 풀리고 자신은 이렇게 쪼들리고 있는지 짜증만 났다. 노력을 안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아벨은 큰 노력 없이 운 좋게 성공해서 잘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길, 도대체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거야?"
아벨은 아벨대로 카인의 태도와 행동에 짜증이 났다. 아벨의 눈에 비친 카인은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주변 여건만 탓하는 패배자였다. 형제라는 이유로 마지못해 금전적으로 좀 도와주기도 했지만 카인은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이런 값싼 동정 따위 필요없지만 형제간이니까 성의를 봐서 받아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벨은 더욱 짜증이 났다. "가진 것도 없고 남탓만 하고 노력도 제대로 안하면서 뭐가 잘났다고 저래?"
결국 형제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아벨은 카인을 무시했고 카인은 아벨을 증오했다.
카인의 울화는 점점 심해져서,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카인은 우선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 보았다.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신(神)의 계율을 지키면서, 아벨이 어떻게 살던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호화롭게 사는 아벨의 모습이 자꾸 눈에 보이니, 아무리 모른척하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던 중에, 카인은 어느 광장에서 우연히 아바돈이라는 이름의 늙은이를 만났다. 200살도 넘은 듯 엄청나게 늙어 보였고 사람인지 유령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소리에는 젊은이 못지 않은 힘이 실려 있었다. 아바돈은 자신을 "가난뱅이들의 구원자"라고 칭하며, 분노에 이를 갈고 있는 카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벨이 저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저 놈은 불의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야. 네가 가져야 할 정당한 몫을 아벨이 교묘하게 가로채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계율이라는 것은 아벨 같은 탐욕스러운 놈들이 자기네들만 호화롭게 살기 위해 만든 속임수라고! 너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너처럼 화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한두명이 아니야. 다 뒤집어버려!"
아바돈의 웅변에 용기를 얻은 카인은 그동안 지켜왔던 신의 계율은 다 허상이며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이 구름이 가려 칠흑 같던 어느 밤에 아벨을 찾아갔다. "네 놈이 그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네 놈이 가로챘기 때문이야. 신의 계율 따위는 너 같은 부자놈들이 지어낸 속임수라고!"
카인은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고 돈과 귀중품을 챙겨 달아났다.
부자가 된 카인은 그 동안의 가난에 복수라도 하듯이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이렇게 꿀 같은 생활을 네 놈 혼자만 즐겼단 말이지? 아벨, 넌 죽어도 싸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다가, 또 다시 달이 구름에 가려 칠흑같은 어느 밤에 카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카인에게 말했다. "네 놈이 그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네 놈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계율 따위는 다 속임수라고!"
도둑은 카인을 돌로 쳐서 죽이고 돈과 귀중품을 챙겨 달아났다.
동명이인: 카인과 아벨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어떤 시기에, 어떤 도시에, 형제가 살았다. 형의 이름은 카인, 동생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은 카인보다 성실하고 눈치도 빨랐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사업이 잘 되어 돈도 많이 벌었다. 친구도 많았고 여자들도 아벨에게만 모여드는 것 같았다. 반면에 카인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긴 했지만 아벨의 성공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였다.
카인은 항상 아벨이 맘에 들지 않았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아벨만 일이 잘 풀리고 자신은 이렇게 쪼들리고 있는지 짜증만 났다. 노력을 안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아벨은 큰 노력 없이 운 좋게 성공해서 잘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길, 도대체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거야?"
아벨은 아벨대로 카인의 태도와 행동에 짜증이 났다. 아벨의 눈에 비친 카인은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주변 여건만 탓하는 패배자였다. 형제라는 이유로 마지못해 금전적으로 좀 도와주기도 했지만 카인은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이런 값싼 동정 따위 필요없지만 형제간이니까 성의를 봐서 받아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벨은 더욱 짜증이 났다. "가진 것도 없고 남탓만 하고 노력도 제대로 안하면서 뭐가 잘났다고 저래?"
결국 형제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아벨은 카인을 무시했고 카인은 아벨을 증오했다.
카인의 울화는 점점 심해져서,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카인은 우선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 보았다.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신(神)의 계율을 지키면서, 아벨이 어떻게 살던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호화롭게 사는 아벨의 모습이 자꾸 눈에 보이니, 아무리 모른척하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던 중에, 카인은 어느 광장에서 우연히 아바돈이라는 이름의 늙은이를 만났다. 200살도 넘은 듯 엄청나게 늙어 보였고 사람인지 유령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소리에는 젊은이 못지 않은 힘이 실려 있었다. 아바돈은 자신을 "가난뱅이들의 구원자"라고 칭하며, 분노에 이를 갈고 있는 카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벨이 저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저 놈은 불의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야. 네가 가져야 할 정당한 몫을 아벨이 교묘하게 가로채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계율이라는 것은 아벨 같은 탐욕스러운 놈들이 자기네들만 호화롭게 살기 위해 만든 속임수라고! 너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너처럼 화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한두명이 아니야. 다 뒤집어버려!"
아바돈의 웅변에 용기를 얻은 카인은 그동안 지켜왔던 신의 계율은 다 허상이며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이 구름이 가려 칠흑 같던 어느 밤에 아벨을 찾아갔다. "네 놈이 그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네 놈이 가로챘기 때문이야. 신의 계율 따위는 너 같은 부자놈들이 지어낸 속임수라고!"
카인은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고 돈과 귀중품을 챙겨 달아났다.
부자가 된 카인은 그 동안의 가난에 복수라도 하듯이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이렇게 꿀 같은 생활을 네 놈 혼자만 즐겼단 말이지? 아벨, 넌 죽어도 싸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다가, 또 다시 달이 구름에 가려 칠흑같은 어느 밤에 카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카인에게 말했다. "네 놈이 그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네 놈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계율 따위는 다 속임수라고!"
도둑은 카인을 돌로 쳐서 죽이고 돈과 귀중품을 챙겨 달아났다.
וַיֹּאמֶר יְהוָה, אֶל-קָיִן: לָמָּה חָרָה לָךְ, וְלָמָּה נָפְלוּ פָנֶיךָ.
הֲלוֹא אִם-תֵּיטִיב, שְׂאֵת, וְאִם לֹא תֵיטִיב, לַפֶּתַח חַטָּאת רֹבֵץ; וְאֵלֶיךָ, תְּשׁוּקָתוֹ, וְאַתָּה, תִּמְשָׁל-בּוֹ.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격노하였느냐? 왜 얼굴을 숙이고 있느냐?
네가 바르게 행한다면 그 얼굴을 다시 들게 되지 않겠느냐? 만약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죄악이 너를 갈망하며 문앞으로 슬금슬금 기어올 것이나, 그래도 너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 (창세기 4:6-7)
덧글
읽어본 적 없죠?
카인과 아벨은 뛰어나고 못난 형제 얘기가 아니라 분업화의 폐해에 관한 얘깁니다.
목축하고 농사짓는 두 형제가 일을 서로 돌려하지 않기 시작해서 생긴 문제.
2천년도 넘은 이야기이고 아주 짧게 압축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분업화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시기와 질투와 증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기원전의 분업화 수준은 그것이 폐해가 될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그 덕분에 각 분야의 발전이 가속화되었다고 봐야 될 듯한데요.
분업화의 폐해가 본질적인 내용인게 맞아요. 더군다나 목축, 육식에 대한 부정적인 신의 의견도 나타납니다.
시기와 질투가 본질이 아니구요. 글구 모든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가 있진 않아요
이야기의 핵심은 목축과 농사중에 어느쪽이 더 긍정적이냐, 또는 분업이 좋으냐 나쁘냐가 아니라, 자신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카인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반성하고 성찰하는 대신 신에게 분노하고 아벨을 질투하다가 결국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다는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시기와 질투가 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군요. "나는 시기와 질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오히려 마음속에 끝도 없는 시기와 질투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걸 감추려고 겉으로 그렇게 정의로운척 공정한척 요란스럽더군요.
육식을 싫어한게 맞아요.
로테이션이 되지 않은 분업화로부터 자의식이 생겨났고 악이 생겨났다는 은유입니다.
마르크스도 이 부분을 짚었구요.
시기와 질투는 연습하고 자기 역량 따라서 달라집니다
시기 질투 있는 사람보다 없는사람이 더 많음
마르크스가 이 이야기를 분업의 폐해라는 식으로 해석했다면 그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자본가들을 잡아 죽이면 노동자의 낙원이 온다는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니즘으로 소련, 중국, 북한, 캄보디아 등지에서 끝도 없는 살인을 불러일으키고 내세로 갈 것도 없이 현세에서 지옥을 이룬 광기의 사상적 아버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죠.
사실 그러고 보니 막시즘이야말로 카인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를 만하겠습니다. "우리는 잘못이 없고 시스템 탓이니까 기득권 계급을 타도하면 된다"는 취지니까요.
시기 질투 "없는 척"하는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페르소나가 인간성의 전부는 아니죠.
사람들이 왜곡 해석한듯.
신이 그럴리가~
반달가면님은 구질구질하게 지적질하며 댓글 남기는 것좀 그만하시죠.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따지고 들면 미드 중독자나 오타쿠라고 하면서 싫어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