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엔드게임 - 개인적으로 기대 이하 일기/잡담

이 글은 어벤저스: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고 볼 계획이라면 읽지 않는 편이 나을 듯하다.



전작인 어벤저스: 인피니티워를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이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컸고 현재 어벤저스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일종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감도 컸다. 아마도 그래서 실망감이 큰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전작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장면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 등은 나쁘지 않았다. 액션이나 대규모 전투 장면도 워낙 예전부터 화려했으니 굳이 더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점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바로 그 전개를 여기서도 그대로 차용했다는 것이다. 루카스필름과 마블 스튜디오가 둘 다 디즈니의 자회사인데 이미 한번 망친것으로는 모자랐던 것일까;;;

과거에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 이야기를 여기까지 끌어온 영웅을 일단 바보 병신으로 만든 후에, 밑도 끝도 없이 너무나 강력해서 평면적이고 따분한 일종의 "최강 캐럭터"를 내세워 과거의 업적을 대체한다는 패턴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인공의 수가 많다 보니 악영향이 반감되었고, 나름대로 재미 있는 부분도 있고 해서 라스트 제다이 같은 총체적인 대참사는 아니라는 점.

스타워즈에서는 다스 베이더를 빛의 세계로 되찾아온 위대한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를 바보천치로 만든 후에, 별 다른 훈련도 없이 집채만한 바위 덩어리 수십개를 한번에 공중으로 띄우는 - 마스터 요다라도 이렇게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 포스를 선보이는 레이를 내세웠다.

어벤저스에서는 사람도 아니고 무려 아스가르드의 신(神)인 토르를 바보천치로 만든 후에, 혼자서 가뿐하게 타노스의 기함을 산산조각내버리는 캡틴 마블을 내세웠다.

어느쪽이 승리하느냐를 떠나서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움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막상막하로 싸우는 명승부를 연출해야 흥미진진할텐데, 뭔가 억지스럽고 김이 빠져서 긴장감 저하에 몰입도 급감. 인피니티워 때와는 전혀 다르게 상당 부분을 무덤덤해하면서 봤다.

그냥 말도 안되게 강한 캐럭터 하나를 뜬금 없이 억지로 추가해서 엉성하게 묶어 놓은 것 같았다. 다른 괜찮은 장면들로 아무리 상쇄해 보려고 해도 개인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마 내가 마블 영화를 좋아하긴 해도 완전 골수팬은 아니라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라스트 제다이보다는 엔드게임이 100배 낫다. 라스트 제다이는 이야기의 김을 빼는 이런 전개 외에도 온갖 기괴한 설정과 전개가 난무해서 도대체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스타워즈가 맞나, 스타워즈 자체에 앙심을 품고 악의적으로 이런 식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망쳐놨는데, 엔드게임은 몰입감은 떨어져도 그 정도는 아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호크 아이와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였다. 영화 전체에서 이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어쨌든, 안타깝께도, 엔드게임을 본 후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절반 이하로 내려간 상태다.



덧글

  • 잠본이 2019/05/06 12:51 # 답글

    라스트 제다이하고는 좀 문제가 다른게, 캡틴마블은 레이처럼 기존 주인공(들)을 대체하는 중심인물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긴급한 상황에 갑툭튀해서 도움을 주고 한발 물러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역할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기존 주인공들이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도 클라이막스 전까지는 '다른데 할일이 많다'며 참가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죠. 파워 밸런스가 캐사기인건 사실인데 토르를 1:1로 대체하는 역할은 아니고 토르도 망가지긴 했지만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고 활약을 하긴 합니다. 스토리 전체를 이끄는 것은 결국 토니와 캡틴을 비롯한 기존 주인공들이었고요.
    토르가 망가지는 것 자체는 사실 다크월드에서부터 계속 소중한 것을 잃기만 하고 개고생해서 납득이 가긴 하지만 성격이 너무 급격하게 찌질해져서 짜증나긴 하죠. 스타로드와 쓸데없이 신경전 벌이는 것도 너무 길게 나왔고...ㅠㅠ
  • 반달가면 2019/05/06 15:17 #

    캡틴 마블이 중심인물을 대체하는 정도는 아니겠으나, 제가 보기엔 이야기 전개의 박진감과 긴장감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구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인류의 절반을 구하겠다는데 '다른 곳에 일이 많아 바쁘다'는 핑계도 영 설득력이 없었고요. 뭐, 본격적으로 도와주면 어벤저스 자체가 필요 없을테니 영화가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이렇게 한 것 같긴 합니다만;;

    토르는 토니 스타크처럼 일반인도 아니고 아스가르드의 천둥신입니다. 타노스 이전에 꽃길만 걸으며 온실속의 화초로 살아온 것도 아닙니다. 타노스가 인피니티 건틀렛을 완성해서 손가락을 튕기기 전에 이미 토르는 부모와 형제와 동료들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톰브레이커를 만들기 위해 몸을 내던져서 니다벨리르의 화로를 되살렸습니다. 그런데 손가락 튕기는걸 못 막았다고 순식간에 일반인 이하의 병신 바보가 되어 있더군요. 그러다가 그나마 정신 차려서 좀 싸운 후에, 그나마 살아남은 아스가르드 백성들도 발키리에게 맡기고 어학연수 떠나듯이 선글라스 쓰고 실실 웃으며 우주여행? 개연성과 설득력 측면에서 도저히 납득이 안됩니다.

    엔드게임이 라스트 제다이와 1:1로 비교가 가능할 정도로 유사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 쓰레기꼴이 되었을 것이나, 다행히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습니다. MCU를 좋아하기 때문에 삐딱한 마음은 커녕 기대에 부풀어 즐거워하며 극장에 들어갔습니다만, 보면서 그냥 김이 빠지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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