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경제 파탄의 간략한 역사 일기/잡담

원문 기사는 여기로

2017년 10월에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게재된 베네수엘라의 몰락에 관한 기고문이다. 베네수엘라에 관해서는 이전에도 몇개의 글을 게시한 적이 있지만, 이 기사에 경제와 관련된 역사가 간략하게나마 정리되어 있기에 해당 부분만 정리해 본다.


한때는 베네수엘라도 부유하던 시기가 있었고, 많은 책과 신문기사에서 "경제적 기적(economic miracle)"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집권했던 5명의 대통령중 4명이 군부독재자였으며 참정권과 시민권이 제약을 받았다. 예를 들어 출판의 자유와 보통선거가 없었다.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상당히 높은 자유를 누렸다.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기적은 100년전에 시작되었다. 1914년부터 1922년 사이에 베네수엘라는 유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1914년에 첫번째 유전을 열었다. 다행히도 정부는 석유산업을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하려 하지 않았다. 유전은 사기업이 소유했으며 많은 경우 소유주체는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기업들이었다. 당연히 완전한 자유방임주의는 아니었으며, 석유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세금 혜택이 있었다. 어쨌든 석유산업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산업은 민영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세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1957년, 개인에 대한 한계세율(marginal tax rate)은 12퍼센트였다. 경제 분야에서 정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분명히 존재했으며 공공부분이 GDP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출은 주로 국가의 기반시설을 건설하는데 투입되었다.

국제무역 분야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가 있긴 했으나 수출입 제한(quota), 반(反)덤핑 법률,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 등은 없었다. 다른 경제 규제도 심하지 않았다. 국유 기업은 소수였고 제품가격, 임대료, 이자율 등에 대한 인위적 통제가 없었으며 환율 통제도 없었다.

물론 베네수엘라도 중앙은행의 문제로부터는 자유롭지 않았다. 1939년에 중앙은행이 설립되었고 주된 기능은 달러 환율 방어였다.

이 시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자유가 있었으나, 정부의 입법이 이러한 자유를 조금씩 제한하기 시작했다. 1950년 이후로 전화회사가 국유화되었으며 국유기업과 국유은행이 다수 생겨났다. 이 시기에 정부가 뿌린 파멸의 씨앗은 1950년대 내내 경제적 자유의 축소로 이어졌다.

1958년, 베네수엘라는 군부독재가 종식되면서 민주화되었다. 이와 함께 출판의 자유, 보통선거 등 민주적 권리들이 실현되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개혁은 경제적 자유의 파괴와 함께 이루어졌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처음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로물로 베탕쿠르(Romulo Betancourt)였다. 그는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한 사민주의자였다. 그는 망명 시절에 코스타리카에서 공산당을 설립했으며 콜럼비아 공산당 설립에도 관여했다. 당연히, 대통령이 된 베탕쿠르는 가격통제를 비롯한 각종 규제들을 도입하여 경제적 자유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유재산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 또는 아마도 이렇게 했기 때문에 - 베탕쿠르는 지금도 여전히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다.

물론 베탕쿠르 정권 시절에도 현재보다는 훨씬 더 큰 경제적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집권한 대통령들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베탕쿠르와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점점 경직시켰다. 예외적인 한명은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즈(Carlos Andres Perez)였는데, 그는 자유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행 과정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결국 개혁의 실패가 시장 자체의 문제로 간주되는 결과를 야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자유의 파괴는 더 많은 빈곤과 위기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대중영합주의(populism)적인 메시지를 주창하는 정치 문외한이 급부상했는데, 그가 바로 우고 차베스(Hugo Chavez)다.  1998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차베스는 그 당시의 가벼운 사회주의를 좀 더 급진적인 사회주의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미 수십년간 지속되던 문제들의 악화를 더욱 가속화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유재산에 대하여 더욱 적대적인 헌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2013년에 차베스가 사망한 이후에도 사유재산에 대한 공격은 지속되었으며 후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는 현재의 기조를 더 강화할 생각이다. 정부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로 가고 있으며, 마두로는 사유재산을 거의 완전히 소멸시키고 자신이 종신집권할 수 있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이후에 베네수엘라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아래에 링크한 과거의 게시물을 참고하면 되겠다.

베네수엘라 - 위기의 경제, 떠나는 사람들

베네수엘라의 몰락

베네수엘라가 사회주의 국가인 6가지 이유

베네수엘라 파라독스 - 국민은 배고프나 농민은 이들을 먹여살릴 수 없다



덧글

  • 풍신 2019/01/11 02:33 # 답글

    저 개인적으론 그래도 1차 산업만 제대로 버텨줬다면, 하이퍼 인플레이션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먹고 살만했을 것이라 봅니다. 브라질이 80~90년대에 1차 산업이 단단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버틴 것처럼...대체 1차 산업에서 그렇게 강하던 국가가, 그야말로 씨앗만 심으면 잘 자라는 적도 근처 국가가 먹을 것이 없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상황이죠. 얼마나 산업을 엉망으로 했으면...

    의외 국부독재 체제+자본주의 상태에서 나라가 나름 잘 발전하더군요. 군부 독재 나름이지만, 찾아보면 군부독재에서 경제적으로 엄청 성장한 나라가 많더군요.(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다지만...)
  • 반달가면 2019/01/11 11:38 #

    정부에 의한 인위적 가격 통제 때문에 그 어떤 산업도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농산물 가격을 국가에서 통제하니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농민들도 다 굶고 있는 것이고요.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본문 맨 아래에 링크한 이전 게시물(베네수엘라 파라독스 - 국민은 배고프나 농민은 이들을 먹여살릴 수 없다)을 참고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국가경제의 발전은 군부독재인가 아닌가보다는 자본주의인가 아닌가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 거대한 설인 2019/01/11 11:58 # 답글

    베네수엘라가 석유 뿐만 아니라 농업에서도 나름 잘나갔다가 차베스때 되도 않는 토지공개념 타령 하면서 농장 몰수후 소작농에게 재분배, 레바논,유태인 이민자 탄압해서 상공업 무너져 버리고대기업 자산 몰수 해서 완전 망테크....

    예전 칠레도 저런짓거리 비슷하게 하다가 보다못한 피노체트가 쿠데타 일으켜서 다시 살아난것처럼...

    쿠데타 일어나지 않는이상 저상태 그대로 쭉 갈꺼 같습니다
  • 반달가면 2019/01/11 21:38 #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잘 살던 산유국이 20년만에 세계 최악으로 몰락했죠; 잘못된 경제 정책이 얼마나 심각하게 나라를 망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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