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 14.04 기반 클라이언트에서 우분투 18.04 기반 NFS 서버에 접속하는 문제 리눅스

정확히 말하자면, 우분투 14.04LTS 기반인 리눅스 민트 17에서 우분투 18.04LTS 기반인 리눅스 민트 19의 NFS 공유 디렉토리에 접속하는 문제다.

리눅스 민트 19 서버에서 정상적으로 NFS를 다 설정하고(NFS 서버 설정은 이전 게시물을 참고하자. 여기로) 방화벽에서도 NFS 접속을 허용하도록 해 두었는데, 클라이언트에서 접속을 하면 접근 불가 오류 메시지가 계속 나왔다.

# 클라이언트에서 NFS 서버로 접속 시도
sudo mount -t nfs server.net:/nfs_export_dir/ ~/nfs_dir
mount.nfs: access denied by server while mounting server.net:/nfs_export_dir/

아무리 이리 저리 찾아 봐도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인터넷을 한참 헤매고 다녔는데, 결국 해결을 하긴 했다. -_-; 클라이언트에서 접속할 때, NFS 버전을 기본값(v4)이 아니라 v3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한가지 추가적으로 해 줘야 하는 작업은 서버측 방화벽에서 대상 클라이언트가 모든 포트에 접속이 가능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NFSv3에서 포트 할당이 무작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아래와 같이 접속해서 NFS 연결이 가능했다.

# 클라이언트에서 NFS 서버로 접속 시도, NFSv3 사용
sudo mount -t nfs -o v3 server.net:/nfs_export_dir/ ~/nfs_dir

클라이언트 IP주소에 대해 모든 포트를 열어둔다는 것이 영 꺼림직한데, 같은 LAN에 있고 당장은 방법이 없어 일단 이렇게 사용해 보기로. -_-;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클라이언트쪽에서 버추얼박스에 리눅스 민트 19를 설치해서 해당 NFS 서버에 접속해 보니 전혀 문제 없이 접속이 가능했다. -_-; NFS 버전에 따라서 뭔가 호환성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뿐이다. 일기/잡담

원문 기사는 여기로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에 게재된 기고문인데,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 문제에 대해 나름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듯하여 주요 내용을 여기에 옮겨 본다.


기후 과학자들에 따르면, 향후 30년 이내에 화석연료 사용을 급격히 줄이지 않는다면 지구 전체가 심각한 재난에 처할 위험성이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인 동시에 산술적인 문제다. 그리고 해결책의 큰 부분은 원자력발전이어야 한다.

전기생산, 난방, 자동차와 비행기의 동력 등 세계 에너지의 80%가 화석연료로부터 나온다. 게다가 가난하던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면서 에너지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화석연료의 소비도 빠르게 증가하는 중이다. 에너지 효율의 개선을 통해 이러한 부담을 줄일 수 있으나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탄소배출을 진정으로 줄이고자 한다면, 훨씬 더 청정한 에너지가 필요하며 - 우리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 연간 100조kWh의 전력을 생산해야 한다. 현재 세계 화석연료 소비량 전체가 그 정도 규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다. 이 목표치를 30년내에 달성하려면 매년 청정 에너지로 3.3조kWh 수준의 전력생산능력을 추가해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이 정도 속도로 전력 수요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자동차 엔진도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에 독일에서 시도했던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장 야심적인 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독일에서 신재생에너지가 가장 빠르게 증가했던 상황을 전 세계 수준으로 확장시켜서 계산해도 연간 0.7조kWh 추가할 수 있는 정도다. 필요한 3.3조kWh의 5분의 1 수준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 전체가 독일과 똑같은 수준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나선다고 해도 탄소배출 문제를 해결하는데 150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더 빠른 속도로 신재생에너지를 늘릴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심각한 문제들은 여전하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의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기는 했으나 석탄과 가스를 이용하는 화력발전에 대한 직접적이고 안정적인 대체 수단이 되지 못한다.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력 생산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기상 조건이 좋을 때는 생산된 전력을 저비용으로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전력은 사용되지 못하고 낭비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신재생에너지에 10억달러를 투자했던 빌 게이츠는 "모든 에너지 소비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또한 풍력, 태양광, 수력 발전의 확대는 방대한 규모의 농지와 숲을 파괴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필요한 것은 탄소배출이 없으면서 빠르게 규모를 확대할 수 있고, 날씨와 무관하게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면서 현재 발전소가 차지하고 있는 대지 면적을 증가시키지 않는 종류의 기술이다. 원자력발전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스웨덴과 프랑스가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원전을 건설하면서 GDP 대비 전력생산 증가 속도는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증가 속도의 5배였다. 스웨덴의 전력생산량이 2배가 되는 동안 탄소배출량은 반으로 줄었다. 원전이 주력인 프랑스의 전기세는 독일 전기세의 절반(55%) 수준이다.

그렇다면 왜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원자력발전을 지지하지 않는 것인가? 왜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전력 업계는 원자력을 확대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중요한 원인은, 대다수 국가의 정책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에너지는 현재까지 고안된 전력생산기술 중에 가장 안전하다. 특히 지금도 대기오염으로 수십만명의 조기사망을 야기하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 60년동안 원전에서 심각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뿐이다. 이 사고로 60명이 사망했고 이후 저농도 방사능으로 인하여 수천명이 더 사망했다. 이것은 분명 심각한 사고다. 그러나 원전이 아닌 다른 발전소의 사고는 더욱 심각했다. 1975년에 중국에서 수력발전용 댐이 붕괴되어 수만명이 사망했고, 1984년 인도 보팔(Bophal)의 유니온 카바이드 발전소의 가스 누출 사고로 4천명이 사망했고 이후 1만5천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이들 사고를 가지고 수력발전과 가스화력발전 전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1979년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 원전 사고에서 사망자는 없었다. 2011년 일본에서 역사상 네번째로 큰 지진이 발생해서 쓰나미가 2만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발생시켰고 후쿠시마 원전을 덮쳐서 방사능 유출을 야기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방사능 노출로 인한 사망은 한명이었고 2016년에 사망했다. 반면에 대피 과정에서의 문제로 인한 사망이 훨씬 더 많았다.

원자력발전은 아주 소량의 방사능이라도 극단적으로 위험하다는 전제하에 규제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연평균 3~200mSv(밀리시버트) 정도의 방사능을 받으면서 별 문제 없이 생활하고 있다. 관련 직업군에서 또는 의학적으로 권고되는 수치는 연평균 50mSv 정도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200mSv 이상의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은 12명이었고 발전소 바깥쪽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누구도 50mSv 이상의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았다. 아주 낮은 수준의 방사능도 측정하고 추적할 수 있으나 이렇게 매우 낮은 수준의 방사능은 해가 되지 않는다.

원전 폐기물 역시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해결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석탄을 비롯한 다른 발전수단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에 비하면 그 부피는 매우 작다. 미국인 한명이 평생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을 원전에서 생산한다면 탄산음료 캔 하나에도 못미치는 양의 폐기물이 생성된다. 지난 60년간 미국 원전 전체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축구장 하나 정도의 면적에 20피트(약 6m) 높이로 쌓아 놓을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이 폐기물을 원전 근처에 콘크리트로 만든 저장공간에 보관하며(방사능은 콘크리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100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될 것이다. 그 이후에는 현재 설계중인 차세대 원자로에서 재활용하거나 영구매장할 수 있다.

원전을 반대하는 모든 이유를 다 가져와도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의 위험성과 비교하면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과도한 공포심일 뿐이다.  

원전을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확대한다면 비용 측면에서도 다른 발전 방식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한국은 동일한 설계를 기반으로 원전 10기를 건설했는데 이미 화력발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 미국과 유럽에서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려는 노력이 수많은 규제로 인하여 비용 증가와 시간지연을 야기했다. 그러나 향후에 표준화된 설계를 바탕으로 공장에서 제작한다면 다른 발전방식보다도 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수백개의 원전을 지으면 청정 에너지에 대한 방대한 규모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기후 참사를 막으면서 개발도상국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청정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은 원자력 발전이다. 현재 산술적으로 앞뒤가 맞는 전략은 이것뿐이다.



참고로,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탈원전을 병행하는 바람에 석탄화력발전을 늘려서 오히려 탄소배출량이 증가했고, 1975년 중국의 댐 붕괴로 발생한 사망자는 17만명이다.



베네수엘라 경제 파탄의 간략한 역사 일기/잡담

원문 기사는 여기로

2017년 10월에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게재된 베네수엘라의 몰락에 관한 기고문이다. 베네수엘라에 관해서는 이전에도 몇개의 글을 게시한 적이 있지만, 이 기사에 경제와 관련된 역사가 간략하게나마 정리되어 있기에 해당 부분만 정리해 본다.


한때는 베네수엘라도 부유하던 시기가 있었고, 많은 책과 신문기사에서 "경제적 기적(economic miracle)"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집권했던 5명의 대통령중 4명이 군부독재자였으며 참정권과 시민권이 제약을 받았다. 예를 들어 출판의 자유와 보통선거가 없었다.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상당히 높은 자유를 누렸다.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기적은 100년전에 시작되었다. 1914년부터 1922년 사이에 베네수엘라는 유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1914년에 첫번째 유전을 열었다. 다행히도 정부는 석유산업을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하려 하지 않았다. 유전은 사기업이 소유했으며 많은 경우 소유주체는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기업들이었다. 당연히 완전한 자유방임주의는 아니었으며, 석유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세금 혜택이 있었다. 어쨌든 석유산업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산업은 민영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세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1957년, 개인에 대한 한계세율(marginal tax rate)은 12퍼센트였다. 경제 분야에서 정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분명히 존재했으며 공공부분이 GDP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출은 주로 국가의 기반시설을 건설하는데 투입되었다.

국제무역 분야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가 있긴 했으나 수출입 제한(quota), 반(反)덤핑 법률,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 등은 없었다. 다른 경제 규제도 심하지 않았다. 국유 기업은 소수였고 제품가격, 임대료, 이자율 등에 대한 인위적 통제가 없었으며 환율 통제도 없었다.

물론 베네수엘라도 중앙은행의 문제로부터는 자유롭지 않았다. 1939년에 중앙은행이 설립되었고 주된 기능은 달러 환율 방어였다.

이 시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자유가 있었으나, 정부의 입법이 이러한 자유를 조금씩 제한하기 시작했다. 1950년 이후로 전화회사가 국유화되었으며 국유기업과 국유은행이 다수 생겨났다. 이 시기에 정부가 뿌린 파멸의 씨앗은 1950년대 내내 경제적 자유의 축소로 이어졌다.

1958년, 베네수엘라는 군부독재가 종식되면서 민주화되었다. 이와 함께 출판의 자유, 보통선거 등 민주적 권리들이 실현되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개혁은 경제적 자유의 파괴와 함께 이루어졌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처음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로물로 베탕쿠르(Romulo Betancourt)였다. 그는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한 사민주의자였다. 그는 망명 시절에 코스타리카에서 공산당을 설립했으며 콜럼비아 공산당 설립에도 관여했다. 당연히, 대통령이 된 베탕쿠르는 가격통제를 비롯한 각종 규제들을 도입하여 경제적 자유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유재산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 또는 아마도 이렇게 했기 때문에 - 베탕쿠르는 지금도 여전히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다.

물론 베탕쿠르 정권 시절에도 현재보다는 훨씬 더 큰 경제적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집권한 대통령들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베탕쿠르와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점점 경직시켰다. 예외적인 한명은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즈(Carlos Andres Perez)였는데, 그는 자유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했지만 실행 과정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결국 개혁의 실패가 시장 자체의 문제로 간주되는 결과를 야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자유의 파괴는 더 많은 빈곤과 위기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대중영합주의(populism)적인 메시지를 주창하는 정치 문외한이 급부상했는데, 그가 바로 우고 차베스(Hugo Chavez)다.  1998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차베스는 그 당시의 가벼운 사회주의를 좀 더 급진적인 사회주의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미 수십년간 지속되던 문제들의 악화를 더욱 가속화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유재산에 대하여 더욱 적대적인 헌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2013년에 차베스가 사망한 이후에도 사유재산에 대한 공격은 지속되었으며 후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는 현재의 기조를 더 강화할 생각이다. 정부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로 가고 있으며, 마두로는 사유재산을 거의 완전히 소멸시키고 자신이 종신집권할 수 있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이후에 베네수엘라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아래에 링크한 과거의 게시물을 참고하면 되겠다.

베네수엘라 - 위기의 경제, 떠나는 사람들

베네수엘라의 몰락

베네수엘라가 사회주의 국가인 6가지 이유

베네수엘라 파라독스 - 국민은 배고프나 농민은 이들을 먹여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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